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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 (자아와 타자, 꿈과 현실, 껍데기와 본질)

dailyfill 2026. 10. 28. 14:05

목차


    재개봉 목록을 훑다가 <아사코>라는 제목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첫사랑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설정, 처음엔 단순한 로맨스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누구를 더 사랑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척하면서, 사실은 훨씬 더 불편한 질문을 꺼내놓거든요. 아사코는 과연 료헤이를 사랑한 걸까요, 아니면 바쿠를 사랑한 걸까요.



    자아와 타자: 아사코는 왜 끝까지 흔들렸나

    이 영화의 원제가 <아사코 I&II>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제 해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1부 오사카, 2부 도쿄라는 시간적 구분이 아니라, 아사코라는 인물 자체가 둘로 쪼개져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셀프 앤 아더스(Self and Others)'라는 사진전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자아와 타자'란, 내가 나를 인식할 때 반드시 나 아닌 존재가 필요하다는 개념입니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을 때 어느 쪽이 '나'이고 어느 쪽이 '타자'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게 이 사진전이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사코는 바쿠를 통해 자신을 정의했고, 바쿠가 사라진 뒤에는 료헤이를 통해 다시 자신을 찾으려 했습니다. 타자를 통해 자아를 확립해 가는 방식, 그게 이 영화의 핵심 구조입니다.

    제가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답답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뭔지도 모른 채 계속 누군가에게 기대는 아사코가 이해는 됐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건 아사코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씩 발견해 가는 면이 있으니까요.

    아사코의 흔들림을 단순히 우유부단한 성격 탓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쿠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묘한 전자음 배경음악이 깔리고, 빵 사러 갔다가 사라지고 신발 사러 갔다가 사라지는 비현실적인 행동들이 이어집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바쿠가 일종의 '꿈'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즉, 아사코에게 바쿠와의 시간 자체가 현실이 아닌 꿈의 영역에 속했던 것이고, 그 꿈을 마침내 내려놓는 순간이 영화의 결말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마구치 료스케 감독은 이 구조를 철저하게 대칭으로 설계했습니다. 오사카의 바쿠, 도쿄의 료헤이. 아사코의 베스트프렌드 하루요, 료헤이의 동료 쿠시다. 수산물 시장 할아버지와 레이코. 각 인물이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배치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이 대칭 구조를 파악하고 나서는 다시 처음 장면부터 복기하고 싶어졌습니다.

    • 아사코는 바쿠(첫사랑)를 통해 자신을 정의했고, 그 빈자리를 료헤이로 채우려 했습니다
    • 바쿠의 등장에는 일관되게 비현실적 연출이 따라붙어 '꿈'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 영화의 인물 배치는 1부(오사카)와 2부(도쿄)가 대칭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 마지막 바다 장면에서 아사코는 두 감정이 뒤섞인 상태를 직접 마주하고서야 선택합니다
    요약: 아사코의 흔들림은 자아를 타자에게서 찾는 인간의 보편적 방식에서 비롯되며, 영화는 이를 꿈과 현실이라는 이중 구조로 풀어냅니다.

     

    껍데기와 본질: 료헤이를 향한 사랑은 진짜였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이겁니다. 아사코가 료헤이를 사랑한 건 결국 바쿠와 똑같이 생긴 얼굴, 즉 껍데기를 사랑한 건 아닐까요.

    영화 안에서 쿠시다가 "형체가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 깨지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대사가 껍데기와 본질이라는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여기서 '껍데기'란 겉으로 보이는 외형, 즉 바쿠와 료헤이가 공유하는 얼굴을 뜻합니다. '본질'은 그 안에 담긴 각자의 성격과 삶의 방식, 그리고 아사코와 나눈 시간들입니다.

    처음에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끌린 건 분명히 껍데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쿠의 얼굴이 아니었다면 서로 마주칠 이유조차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꼭 '가짜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어떤 인연이든 처음엔 외형에서 시작되고, 시간이 쌓이면서 본질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사코도 결국 료헤이의 친절한 성격, 일상을 함께 나눈 시간들을 통해 그를 '더' 사랑하게 됩니다. 영화 안에서 '더'라는 단어가 포인트로 느껴졌습니다. 원래 사랑했다는 것은 껍데기 때문이었고, '더' 사랑하게 됐다는 건 본질까지 사랑하게 됐다는 신호라는 해석이 가능하거든요.

    고양이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아사코는 바쿠와의 기억을 고양이라는 존재에 담아 계속 데리고 다닙니다. 고양이는 사랑의 징표이자, 그 관계의 메모리칩 같은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메모리칩이란 특정 기억과 감정을 저장하는 물리적 상징물을 뜻합니다. 아사코가 끝끝내 고양이를 버리지 못한 건, 바쿠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고양이를 료헤이에게 넘기는 장면은, 이제야 비로소 그 기억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제 경험상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꼭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해서는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의 감정, 그때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사코가 바쿠를 그리워한 것도 어쩌면 그와 함께했던 '오사카 시절의 자신'을 붙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마야라는 인물도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처음 만남에서 "제가 즐거워서 맞춰준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 아사코를 바라보는 료헤이를 볼 때 "설렌다"는 말을 듣고 묘하게 굳어지는 표정, 만삭 상태에서도 떠나는 아사코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 저는 마야에게도 료헤이를 향한 감정의 흔적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그 감정이, 영화 전체에 또 하나의 메아리처럼 울립니다. 출처: Cinémathèque française — 아사코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으로, 하마구치 료스케 감독의 서사 구조 설계 방식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출처: IMDb — Asako I&II에서도 이 작품의 원제와 개봉 이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약: 껍데기(외형)에서 시작된 사랑이 본질(시간과 신뢰)로 깊어질 수 있으며, 고양이는 그 전환점을 가장 조용하게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사코에서 바쿠와 료헤이가 같은 배우인데 어떻게 구분하나요?

    A.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두 역할을 모두 연기합니다. 바쿠는 충동적이고 비현실적인 행동 패턴을 갖고 있으며, 배경음악도 묘한 전자음이 깔립니다. 료헤이는 반대로 안정적이고 일상적인 직장인입니다. 성격과 연출 방식이 완전히 달라 보는 내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Q. 아사코 결말이 이해가 안 되는데 아사코는 왜 료헤이에게 돌아갔나요?

    A. 아사코는 바다 앞에서 두 감정이 뒤섞인 상태를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료헤이와 함께한 시간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바쿠가 사실 꿈이었다는 인식이 생긴 순간, 그 꿈에서 벗어나 현실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료헤이를 찾아간다는 설정이 그 결심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Q. 영화에서 고양이가 자꾸 나오는 이유가 뭔가요?

    A. 고양이는 아사코와 바쿠 사이의 사랑 징표이자, 그 관계의 기억을 담은 상징물로 기능합니다. 아사코가 도쿄에 온 뒤에도 고양이를 계속 데리고 다닌다는 건, 바쿠를 향한 감정을 아직 완전히 놓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에 료헤이에게 고양이를 건네는 장면이 사실상 감정 정리의 완성입니다.

     

    Q. 아사코가 칸에 진출한 작품이라고 하던데 어떤 면이 평가받은 건가요?

    A. 하마구치 료스케 감독 특유의 인물 대칭 구조와 자아·타자라는 철학적 주제 설정이 유럽 영화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자아와 타자란 내가 스스로를 인식하기 위해 나 아닌 타인이 필요하다는 개념인데, 이를 '같은 얼굴의 두 남자'라는 설정으로 구체화한 방식이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평범한 로맨스처럼 시작해 점점 두꺼운 주제를 드러내는 연출 방식도 강점으로 꼽힙니다.

     

    결론

    제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떠올린 질문은 결국 이겁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본질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을 통해 과거의 나를 붙들고 있는 건 아닌가. 아사코의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건, 그 질문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아와 타자, 꿈과 현실, 껍데기와 본질. 이 세 가지 축을 염두에 두고 보면 영화가 완전히 다르게 읽힙니다. 재개봉이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볼까 고민 중입니다. 처음 봤을 때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일 것 같아서요. 특히 처음 등장하는 사진전 장면, 그리고 마지막 바다 장면을 다시 눈여겨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jyztgM7e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