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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코타 존슨 영화라는 말에 반쯤 기대를 접고 들어갔는데, 앤 해서웨이가 침대에 누운 채로 눈동자만 굴리는 장면에서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던 심리 스릴러 <베러티>,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코타 존슨과 앤 해서웨이, 온도 차가 너무 컸다
제가 직접 영화관에서 봤는데, 두 주연 배우의 연기 밀도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다코타 존슨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이후 <서스페리아> 같은 작품으로 연기 폭을 넓혀왔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입니다. 유전적으로도 어머니 멜라니 그리피스, 아버지 돈 존슨, 새아버지 안토니오 반데라스라는 연기 명가 혈통을 이어받았으니 잠재력을 의심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베러티>에서 로웬 역의 다코타 존슨은 "냉정한 성격의 캐릭터"라는 설정과 "그냥 평범한 연기"의 경계를 좀처럼 넘지 못했습니다. 감정선이 팽팽하게 조여야 할 순간에도 표정이 균일하게 유지되어서, 저는 관람 내내 캐릭터의 공포가 아니라 배우의 무표정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반면 앤 해서웨이는 달랐습니다. 전신마비 상태, 즉 사지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오직 눈동자만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오싹한 존재감을 만들어냈습니다. 회상 장면에서 정상적으로 걷고 말하는 베러티를 연기할 때와 침대에 누운 베러티를 연기할 때의 분위기 차이가 너무 커서, 같은 배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앤 해서웨이가 없었다면 이 영화의 긴장감은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쉬 하트넷은 제러미 역을 맡았는데, <블랙 호크 다운>에서 빛났던 액션 연기와는 결이 다른 역할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섹시한 이미지는 유지되고 있지만, 로맨스·스릴러 장르에서 외모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는 패턴이 이 작품에서도 반복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반전 구조,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몰입했던 부분은 베러티가 컴퓨터에 남긴 자서전 형식의 기록이었습니다. 쌍둥이를 임신한 뒤 남편의 사랑이 아내에서 아이들에게로 옮겨가는 것에 질투를 느낀다는 내용, 그리고 딸의 죽음에 자신이 개입했다는 암시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로웬이 그 파일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저도 함께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릴러 장르의 핵심 개념인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Unreliable Narrator)"가 등장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 자신이 거짓말을 하거나 착각을 하고 있어 독자나 관객이 그 시각을 맹목적으로 믿어선 안 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베러티>는 이 장치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약간 다른 시각으로 봤습니다. 베러티가 남긴 기록이 진실이냐 거짓이냐의 문제보다, 그 기록을 읽은 로웬과 제러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사람은 눈앞의 증거보다 믿고 싶은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진짜 주제처럼 보였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기록은 앞서 자서전과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영화는 끝끝내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원작 소설 <베러티>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콜린 후버는 <잇 엔즈 위드 어스>로 잘 알려진 작가로, 감정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독자층을 넓혀온 것으로 평가받습니다(출처: Goodreads, Verity by Colleen Hoover).
대필 작가라는 설정, 현실에서도 있는 일이다
제가 직접 찾아봤는데, 영화 속 로웬의 역할처럼 원작자가 사망하거나 집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른 작가가 시리즈를 이어가는 경우는 실제로 드물지 않습니다. 이를 고스트라이팅(Ghostwriting)이라고 부릅니다. 고스트라이팅이란 실제로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의뢰인 명의로 작품을 출판하는 관행을 뜻합니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라르손은 3편을 마친 뒤 세상을 떠났고, 이후 다른 작가가 4편부터 시리즈를 이어갔습니다. 원작 3편과의 완성도 차이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로버트 러들럼의 본 시리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러들럼 사후에 다른 작가들이 집필한 후속작들은 초반의 밀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로웬이 "내가 베러티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을까"를 두려워하는 장면은 그래서 저에게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고민처럼 느껴졌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독자들은 문체와 호흡까지 기억하기 때문에, 대필 작가가 아무리 잘 써도 독자는 금방 다른 손의 냄새를 맡아냅니다.
영화는 이 부분을 충분히 파고들지 않고 서둘러 넘어가는데, 그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로웬이 실제로 대필 작업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보다, 베러티의 비밀을 파헤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빠르게 이동해 버립니다.
-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 시리즈 — 3편 이후 대필 작가가 집필, 완성도 논란 지속
- 로버트 러들럼 <본> 시리즈 — 러들럼 사후 다른 작가들이 후속작 이어감
- 영화 <베러티> — 무명 작가 로웬이 베러티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후속 3편 대필 의뢰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 시작
결말의 반전, 설득력 있었나
이 부분에서 의견이 갈릴 것 같습니다. 저는 마지막 반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어서 처음에는 "오, 이렇게 끝내는구나" 싶었는데, 곱씹을수록 납득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로웬과 제러미가 베러티를 살해하는 장면의 전개가 너무 급박하게 처리됐고, 이후 사건의 수습 과정이 현실적인 논리와 어긋나는 부분이 여러 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법의학적(Forensic) 관점에서 보면 특히 그렇습니다. 법의학이란 사망 원인이나 범죄 행위를 의학적·과학적 방법으로 규명하는 학문입니다. 질식사를 당한 뒤 익사로 위장하는 경우, 폐에 물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점이 사후 부검에서 바로 확인됩니다. 거기에 질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점상출혈(Petechiae), 즉 모세혈관이 터져 눈 흰자나 피부에 미세한 붉은 점이 생기는 현상도 발견됩니다. 영화는 이런 부분을 너무 쉽게 넘어갔습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는 이 허술한 마무리가 오히려 의도적인 장치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관객이 "경찰이 왜 이걸 못 잡아냈지?"라고 의심하도록 만들어, 마지막 편지의 신빙성을 더 흔들리게 하는 구조가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제 해석이 너무 너그러웠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심리 스릴러(Psychological Thriller) 장르는 관객이 논리적 허점보다 감정적 몰입을 우선하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 스릴러란 폭력이나 액션보다 인물의 심리적 긴장과 불안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베러티>는 이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후반부의 급격한 사건 전개가 그 심리적 몰입을 스스로 끊어버렸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던 게 제 귀에도 분명히 들렸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Verity(2025)).
자주 묻는 질문
Q. 베러티 영화, 원작 소설이랑 많이 다른가요?
A. 제가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아 직접 비교는 어렵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경우 원작보다 영화가 아쉬운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작자 콜린 후버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정도 작품에 만족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소설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베러티 결말이 이해가 안 돼요. 누가 진짜 범인인가요?
A. 영화는 의도적으로 결말을 열어둡니다. 베러티의 자서전이 진실이라면 베러티가 딸을 죽인 것이고, 마지막 편지가 진실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느 쪽을 믿느냐에 따라 등장인물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뒤집히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강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가장 불친절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앤 해서웨이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나오나요? 비중이 작지 않나요?
A. 앤 해서웨이의 출연 분량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회상 장면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침대에 누워 눈동자만 움직이는 장면과 정상적으로 걷고 말하는 회상 장면을 오가며 두 가지 전혀 다른 베러티를 연기합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앤 해서웨이는 분량 대비 인상 깊이는 압도적이었습니다.
Q. 무서운 장면이 많은가요? 공포 영화에 가까운가요?
A. 공포 영화보다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점프 스퀘어 효과가 몇 차례 사용되고, 로웬의 환각 장면이 반복되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다만 공포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간다면 전개 속도가 느리고 긴장감이 이완되는 구간이 있어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론
<베러티>는 제가 반신반의하며 들어간 영화관에서, 앤 해서웨이 덕분에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 구조와 열린 결말은 분명히 인상적인 장치입니다. 베러티의 자서전과 마지막 편지 중 무엇이 진실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법의학적 허점과 급박한 마무리, 다코타 존슨의 평이한 연기가 합쳐져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를 흐렸습니다. 아직 원작 소설을 읽지 않으셨다면, 영화보다 소설이 이 이야기의 진가를 더 잘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먼저 보셨다면 소설로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